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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리뷰 - 로즈버드, 끝내 대답하지 못한 유언

by 희망의 나라 2026. 9. 3.

눈 속에 파묻힌 유리구슬과 신문왕의 마지막 숨결

올슨 웰스가 스물다섯 살에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시민 케인은 거대한 성 재너두에서 홀로 숨을 거두는 찰스 포스터 케인의 죽음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의 손에서 유리구슬이 떨어져 깨지는 순간 그는 로즈버드라는 한 단어를 남기고 눈을 감는다. 뒤이어 등장하는 가짜 뉴스릴 형식의 오프닝은 케인이 신문 재벌에서 정치인을 꿈꾸다 스캔들로 몰락하고 오페라 가수 수잔 알렉산더와 재혼한 뒤 은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압축해서 전달한다. 잡지사 기자 톰슨은 로즈버드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케인의 후견인이었던 은행가 대처의 기록, 동업자 번스타인, 절친했던 친구 리랜드, 그리고 두 번째 아내 수잔을 차례로 찾아다니며 증언을 모은다. 이 증언들은 서로 어긋나고 겹치면서 케인이라는 인물을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여러 개의 조각으로 재구성한다. 콜로라도의 가난한 하숙집에서 뛰놀던 소년이 어머니의 결정으로 부유한 대처에게 맡겨지는 장면, 이상주의로 가득했던 청년 시절 신문사 인콰이어러를 인수하며 원칙 선언문을 발표하던 순간, 권력의 정점에서 스캔들로 모든 것을 잃는 과정이 차례로 펼쳐진다. 톰슨은 끝내 로즈버드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한 채 취재를 마무리하지만, 관객은 마지막 장면에서 하인들이 쓸모없는 물건들을 태우는 불길 속에 어린 시절 그가 타던 썰매가 있고 그 위에 로즈버드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결국 평생을 쫓아온 부와 권력으로도 되찾을 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 곁에서 눈싸움을 하던 유년의 순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영화 중반부에서 케인이 정계 진출을 노리며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상대 진영에 정부와의 관계를 폭로당해 순식간에 몰락하는 장면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으로 그려진다. 이 스캔들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정치적 미래마저 산산조각 난 이후에도 케인은 신념을 밀어붙이는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이는 오랜 벗 리랜드조차 등을 돌리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노년의 케인이 텅 빈 재너두 저택 안에서 세계 각지에서 사들인 조각상과 미술품들이 채 풀리지도 않은 채 쌓여 있는 창고를 지나치는 장면은 그가 쌓아 올린 부가 실질적인 만족이 아니라 공허함만을 축적해 왔음을 시각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준다. 집사 레이먼드는 케인이 임종 직전 로즈버드라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증언하지만 정작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덧붙이는데, 이 짧은 대사는 아무리 가까운 곳에서 한 인간을 지켜본 사람이라 해도 그의 내면 깊은 곳까지는 결코 닿을 수 없다는 이 영화의 근본적인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다.

토랜드의 딥 포커스가 그려낸 재너두의 텅 빈 복도

시민 케인이 지금까지도 영화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는 이야기 구조뿐 아니라 촬영과 편집 방식 자체가 당대 할리우드 문법을 완전히 뒤엎었기 때문이다. 촬영감독 그레그 톨랜드와 함께 개발한 딥 포커스 기법은 화면의 앞쪽 인물과 저 멀리 배경까지 동시에 선명하게 담아내면서 한 프레임 안에서도 권력관계와 심리적 거리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케인의 방대한 저택 재너두의 복도나 거실을 낮은 각도에서 올려다보는 로우앵글 촬영은 천장까지 세트로 제작해야 했을 만큼 파격적이었으며, 인물을 실제보다 더 위압적이고 고립된 존재로 보이게 만든다. 여러 인물의 회상이 교차하는 비선형적 구성은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점에서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이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서사 구조에 영향을 주었다. 인물의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를 대사 한 줄이나 소품 하나로 압축해서 넘어가는 몽타주 편집, 서로 다른 공간의 소리를 겹치며 장면을 이어 붙이는 사운드 브리지 기법 역시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시도였다. 이 영화는 실존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를 강하게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격렬한 방해를 받았고, 허스트 계열 신문들은 광고 게재를 거부하며 흥행을 방해했다. 그 결과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서 참패했지만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재평가되며 영국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선정하는 역대 최고의 영화 목록에 반복적으로 이름을 올리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웰스는 라디오 드라마 우주 전쟁의 생방송 연출로 이미 대중을 놀라게 한 경험이 있었기에 영화에서도 대사와 대사가 서로 겹쳐 들리는 오버래핑 사운드를 과감히 도입했고, 이는 인물들의 대화를 더욱 사실적이고 소란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또한 한 인물이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을 여러 해에 걸친 조찬 식탁 장면 몇 컷만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몽타주는 부부 관계가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을 대사 없이도 명확하게 전달하는 편집의 정수로 꼽힌다. 촬영 당시 스물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웰스는 촬영, 연출, 각본, 주연을 모두 소화하며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고, 이 데뷔작 하나로 이후 등장할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화 언어의 가능성을 새롭게 제시한 인물로 남았다. 훗날 마틴 스코세이지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를 비롯한 뉴 할리우드 세대 감독들이 한결같이 이 작품을 교재처럼 언급했으며, 딥 포커스와 비선형 편집, 다중 시점 서술이라는 세 축은 이후 전기 영화와 미스터리 장르 전반의 표준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새장 속에서 노래를 강요당한 수잔, 그리고 불타는 썰매

이 영화가 단순한 재벌의 흥망성쇠를 넘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로즈버드라는 상징을 통해 부와 성공이 결코 채워줄 수 없는 결핍을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케인은 평생 신문사와 정치, 예술 후원과 결혼을 통해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얻으려 하지만 정작 그가 가진 모든 것은 사랑을 대체하려는 헛된 시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두 번째 아내 수잔에게 어울리지 않는 오페라 가수의 길을 강요하며 거대한 극장을 지어주는 장면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와 통제로 변질된 관계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수잔이 갇혀 지내는 재너두의 거대한 거실에서 홀로 조각 그림 퍼즐을 맞추는 모습은 케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끝내 완성되지 못하는 퍼즐임을 암시하는 장치로 읽힌다. 여러 개의 거울이 늘어선 복도에서 자신의 모습이 무한히 반복되어 비치는 장면 역시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이 실제로는 파편화되고 고립된 자아로 살아가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기자 톰슨은 결국 한 인간의 삶 전체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관객만이 홀로 타오르는 썰매를 목격하며 진실에 다가선다. 이는 언론과 대중이 유명인의 삶을 단순한 이야기로 소비하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코 다 알 수 없는 개인의 진실이 존재한다는 웰스의 통찰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 미디어 권력과 명성의 공허함을 이야기할 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케인이 늘 입버릇처럼 되뇌던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면 결국 다른 것으로라도 채우려 한다는 대사는 영화 전체의 주제를 요약하는 열쇠와도 같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잃은 자리를 신문사와 정치권력으로, 그마저 잃자 미술품 수집과 수잔에 대한 집착으로 계속해서 대체하려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진짜 빈자리를 메우지 못했다. 영화의 마지막, 재너두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하늘로 흩어지는 장면은 한 인간이 평생 쌓아 올린 부와 명성조차 결국 한 줌의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저택 정문에 걸린 출입 금지라는 팻말과 철조망을 비추며 시작되는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케인이라는 인물이 세상과 스스로를 얼마나 철저하게 단절시키며 살았는지를 상징적으로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며, 결말에 이르러 관객은 그 단절의 근원이 다름 아닌 어린 시절 강제로 헤어진 어머니와의 이별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처럼 한 소품에서 시작해 한 인간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상실의 서사를 완성해 낸 각본의 정교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팔십 년이 넘도록 회자되는 근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