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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갓』 리뷰 - 파벨라에서 카메라를 든 소년과 총을 든 소년의 갈림길

by 희망의 나라 2026. 9. 15.

부스카페의 렌즈가 붙잡은 두 갈래 인생

페르난도 메이렐레스와 카티아 룬드가 공동 연출한 이 작품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리우데자네이루 외곽 빈민가 시다지 지 데우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화자이자 관찰자인 소년 부스카페는 갱단의 폭력이 일상이 된 동네에서 자라지만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그 소용돌이의 바깥에 머무르려 한다. 형이 강도단에 몸담았다가 총격에 목숨을 잃는 모습을 지켜본 어린 부스카페에게 사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생존의 수단이자 폭력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이었으며, 동시에 자신이 속한 세계를 기록하고 증언하려는 본능적인 욕구이기도 했다. 영화는 그의 내레이션을 따라 시간을 앞뒤로 자유롭게 오가며 여러 인물의 사연을 촘촘히 엮어내는데, 이 비선형 구조 덕분에 한 동네의 역사가 마치 여러 겹의 신문 기사를 이어 붙인 듯한 입체감을 얻는다. 어린 시절의 부스카페가 삼인조 강도단 형들을 동경하면서도 정작 방아쇠를 당기지 못해 조롱당하는 장면은, 그가 애초부터 폭력의 세계와는 다른 결을 지닌 인물임을 암시하는 복선으로 기능한다. 결정적으로 부스카페가 지역 신문사에 갱단의 사진을 몰래 팔면서 위험천만한 취재원이자 목격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폭력의 한복판에서도 예술과 기록이 어떻게 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의 중심축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잠든 리틀 제 무리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총성 대신 플래시가 터지는 아이러니로 완성되며, 총을 들지 않고도 살아남아 관찰자로 남기를 선택한 소년의 조용한 승리를 상징적으로 매듭짓는다. 이는 실존 인물 파울루 링스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바탕으로 쓴 원작 소설이 담아낸 생생한 증언의 힘을 스크린 언어로 정교하게 옮긴 결과이기도 하다. 부스카페가 여러 시기를 오가며 만나는 인물들, 이를테면 갱단에서 발을 빼려다 실패하는 베네나 폭력을 거부하고 록 음악과 자유연애에 몸을 맡기는 히피 친구들의 모습은 같은 동네 안에서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하는 다양한 삶의 결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짝사랑하는 앙젤리카를 두고 갱단원 하날두와 벌이는 미묘한 신경전은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평범한 청춘의 감정을 환기시키며, 그 대비가 오히려 이 동네의 비극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든다. 결국 부스카페라는 인물은 관객이 이 낯설고 폭력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안전한 통로이자, 카메라라는 매개를 통해 폭력을 소비하지 않고 응시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안내자 역할을 수행한다.

리틀 제, 열 살의 총구와 웃음의 온도

극의 또 다른 축은 어릴 때부터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며 갱단의 정점에 오르는 리틀 제다. 그는 어린 시절 여관을 털던 삼인조의 막내로 등장해 이미 사람을 쏘는 데 망설임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시다지 지 데우스 전역의 마약 거래를 장악한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며 경쟁 조직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배우 레안드루 피르미누가 연기한 이 인물은 순간순간 표정을 바꾸며 친근한 웃음과 섬뜩한 살기를 오가는데, 이 낙차가 관객에게 예측 불가능한 공포를 심어주고 그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리틀 제의 폭력은 개인적 원한을 넘어 구역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사업적 계산과 뒤섞여 있어서, 그가 벌이는 살인이 단순한 악행이 아니라 빈민가 지하 경제 구조가 낳은 필연적 산물임을 드러낸다. 영화는 그를 온전한 악의 화신으로만 그리지 않고, 마음에 둔 여자에게 거부당하거나 어린 시절 친구 베네에게 은근한 열등감을 느끼는 장면을 통해 인간적인 균열도 함께 포착하며 그를 단순한 괴물이 아닌 시대의 산물로 그려낸다. 그럼에도 그의 손에서 벌어지는 처형 장면들, 특히 대여섯 살 어린아이들에게 총을 쥐여주고 살인을 강요하는 대목은 폭력이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는 구조적 시스템임을 잔혹할 만큼 냉정하게 증언한다. 결국 경찰에게 전 재산을 빼앗기고 마지막으로 어린 갱단원들에게 목숨을 잃는 리틀 제의 몰락은 개인의 파멸이자 그가 지배했던 폭력의 순환이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순간이기도 하며, 이는 이 도시의 비극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냉정하게 못박는 결말이다. 그의 라이벌이자 유일하게 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마네 하이누라는 인물과의 대립 구도 역시 눈여겨볼 지점인데, 종교에 귀의해 갱단을 떠나려 했던 마네가 결국 리틀 제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전개는 이 동네에서 폭력을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뼈아프게 보여준다. 리틀 제가 권력을 쥐는 과정에서 동업자였던 카베렁을 배신하고 제거하는 장면들 또한 그의 지배가 신의나 우정이 아니라 오직 두려움과 계산 위에 세워졌음을 드러내며, 이렇게 쌓아 올린 권력은 결국 자신이 짓밟았던 어린 세대의 손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인과율을 완성한다. 리틀 제가 마지막까지 두려워했던 유일한 상대가 라이벌 갱단이 아니라 자신이 함부로 대했던 꼬맹이들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세운 폭력의 제국이 애초부터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있었는지를 씁쓸하게 증명해 보인다.

핸드헬드 카메라와 교차편집이 완성한 파벨라의 속도감

이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 남긴 가장 뚜렷한 흔적은 이야기 자체보다 그것을 전달하는 형식에 있다. 세자르 샬로니가 담당한 촬영은 대부분 손에 들린 카메라로 진행되어 인물들의 숨소리와 발걸음까지 함께 뛰어다니는 듯한 현장감을 만들어내고, 다니엘 헤자우지의 편집은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짧은 장면들을 빠른 리듬으로 이어 붙여 마치 갱단의 심장 박동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속도감을 완성한다. 특히 닭 한 마리가 도망치는 소동으로 시작해 순식간에 총격전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이후 펼쳐질 이야기 전체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예고하는 동시에, 관객을 별다른 유예 없이 곧장 사건의 한복판으로 밀어넣는 장치로 기능한다. 색감 보정에서는 시대에 따라 채도를 다르게 조절해 1960년대의 따뜻하고 노스탤지어 어린 톤과 1970년대 이후의 거칠고 탁한 톤을 뚜렷하게 구분했으며, 이는 대사 한마디 없이도 낙관이 서서히 사라져가는 동네의 정서 변화를 시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실제 파벨라 출신의 비전문 배우들을 수백 명 규모로 캐스팅하고 수개월간 연기 워크숍을 거쳐 즉흥 연기를 다듬은 제작 방식 역시 극의 사실성을 근본에서 뒷받침하는 요소로 꼽힌다. 이러한 형식적 실험은 이후 할리우드를 포함한 여러 범죄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의 편집 문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으며, 폭력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압도적인 에너지로 전달하는 절묘한 균형점을 찾은 사례로 지금까지도 자주 인용된다. 사운드 디자인에서도 삼바와 보사노바 선율을 총성이나 정적과 교차시켜 흥겨움과 공포를 한 화면 안에 동시에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축제와 죽음이 공존하는 브라질 빈민가의 역설적 일상을 청각적으로도 완성해내는 장치다. 또한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반복해 보여주는 구성은 하나의 진실이 관찰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읽힐 수 있는지를 실험하며,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극영화적 구성력을 동시에 갖춘 독창적인 서사 문법으로 완성된다. 이 작품이 개봉 이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감독상 등 네 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것도, 단순히 빈민가의 참상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형식적 완성도로 예술영화와 대중영화의 경계를 동시에 만족시켰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