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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사무라이』 리뷰 - 밥 한 그릇을 위해 목숨을 건 무사들의 여름 산적이 두려운 농민들, 낟알 대신 칼을 든 이들을 찾아 나서다전국시대 말기, 산속의 작은 마을은 매년 추수철마다 산적 떼의 약탈에 시달린다. 이번에도 산적들이 곧 마을을 습격하겠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고, 결국 촌장은 낡은 갑옷과 몇 안 되는 재산을 팔아서라도 무사를 고용해 마을을 지키자는 결단을 내린다. 그러나 돈 한 푼 없이 밥만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목숨을 걸 사무라이를 구하기란 쉽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도시를 떠돌며 굶주린 이들에게 밥을 나누어주는 무사 간베에를 만나면서 실마리를 찾는다. 간베에는 처음에는 이 무모한 제안을 거절하지만, 굶주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인질범을 상대하는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의 간청에 결국 마음을 돌린다. 이후 간베에는 실전 경험이 풍부.. 2026. 9. 26.
『라쇼몽』 리뷰 - 같은 사건, 네 개의 진실이 부딪히는 숲속 법정 폭우 속 라쇼몽 문, 나무꾼과 승려가 되풀이하는 기이한 이야기폐허가 된 라쇼몽 성문 아래, 쏟아지는 비를 피해 나무꾼과 승려,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이 모여든다. 나무꾼과 승려는 방금 관아에서 겪은 일로 넋이 나간 표정이다. 숲속에서 사무라이가 살해된 사건에 대해 심문이 벌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나온 증언들이 하나같이 서로 다르고 심지어 스스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셋이나 나왔기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기이한 상황을 통해 인간의 기억과 진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를 파헤친다. 산적 다조마루는 자신이 사무라이를 정정당당하게 결투로 이겼다고 자랑스럽게 진술하고, 사무라이의 아내는 자신이 겁탈당한 뒤 정신을 잃은 사이 벌어진 일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그린다. .. 2026. 9. 25.
『동경이야기』 리뷰 - 다다미 위에서 바라본 가족의 거리감 노부부의 상경, 자식들의 집 앞에서 서성이는 발걸음오노미치에 사는 노부부 슈키치와 도미는 오랜만에 도쿄에 사는 자식들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큰아들은 개업의로 바쁘고, 큰딸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라 부모를 극진히 대접할 여유가 없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이 상경 여정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에서 가족 관계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부모는 자식들이 자신들을 반겨주리라 기대하지만, 도쿄에서 자리 잡은 자식들은 각자의 생업에 치여 부모를 온전히 돌볼 여력이 없다. 결국 자식들은 여비를 모아 부모를 온천 여관으로 보내는데, 이는 효도라기보다 부모를 잠시 떼어놓기 위한 방편에 가깝다. 시끄러운 온천장에서 잠 못 이루는 노부부의 모습은 이 영화가 그리는 소외감을 압축적.. 2026. 9. 22.
『화양연화』 리뷰 - 스쳐 지나간 순간을 붙잡는 왕가위의 시선 좁은 복도와 붉은 벽지,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리듬1962년 홍콩의 한 아파트, 같은 날 이웃으로 이사 온 차우와 첸 부인은 처음엔 그저 스치는 인연이었다. 좁은 계단과 공용 부엌을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서로가 지니고 있던 핸드백과 넥타이가 자신의 배우자가 지닌 물건과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각자의 배우자가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배우자가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게 된 것이다. 왕가위 감독은 이 발견의 순간을 자극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좁은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의 걸음걸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소리, 국수를 사러 나가는 뒷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감정의 결을 천천히 쌓아 올린다. 카메라는 인물의 얼굴보다 등과 어깨, 손.. 2026. 9. 21.
『조커』 리뷰 - 웃음을 강요받던 한 남자가 광대 분장 아래 도시를 뒤흔들기까지 아서 플렉, 억지웃음의 병을 앓는 광대의 하루토드 필립스가 연출한 이 작품은 1980년대 초 쓰레기 파업으로 도시 전체가 악취와 혼란에 휩싸인 고담을 배경으로, 파티 광대로 일하며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는 아서 플렉이 서서히 조커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하는 아서는 뇌 손상으로 인해 감정과 무관하게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병을 앓고 있으며, 이 병으로 인해 버스 안에서 아이를 웃기려던 순수한 행동조차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과 폭력의 빌미가 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는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는 어머니 페니를 홀로 부양하며 상담 치료와 약물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시 예산 삭감으로 상담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그를 지탱해주던 마지막 사회적 안전망마저 사라지고 만다. 지하철에.. 2026. 9. 20.
『셰이프 오브 워터』 리뷰 - 말을 잃은 여인과 물속의 존재가 나눈 은밀한 사랑 일라이자, 목소리를 잃은 청소부가 나눈 침묵의 언어기예르모 델 토로가 연출한 이 작품은 1960년대 냉전 시기 미국의 비밀 연구소를 배경으로, 어릴 적 사고로 목소리를 잃고 수화로만 소통하는 청소부 일라이자가 그곳에 감금된 정체불명의 양서인과 서서히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그린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하는 일라이자는 대사가 거의 없는 배역임에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전달하며, 그녀가 매일 반복하는 단조로운 일상, 즉 계란을 삶고 목욕을 하며 자위를 하는 장면들은 그녀가 오랫동안 외로움 속에 갇혀 지내왔음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처음 연구소에서 사슬에 묶인 채 고통받는 양서인을 발견하고 연민을 느끼며 몰래 삶은 계란을 건네는데, 이 사소한 호의가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존재 사이에 서서.. 2026. 9. 19.